- 조희송 전 공무원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육십갑자의 마흔두 번째 해인 을사년(乙巳年)으로 푸른 뱀의 해다. 천간(天干)은 청색을, 지지(地支)는 뱀을 상징한다. 조상들은 뱀을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 집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또한 뱀을 보며 영생불사나 다산을 기원했다. 꿈속에서 뱀이 나타나면 재물과 행운, 치유와 풍요를 상징하는 길몽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푸른 뱀은 지혜와 변혁, 재생과 성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화와 균형을 기원하는 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을사년은 우리에게 큰 아픔을 주곤 했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은 너무나도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대표적 불평등 조약이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송두리째 박탈됐다. 대한제국은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 등 5명을 을사오적이라 불렀다. 또한 1905년 을사년 이후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으면 그 분위기가 마치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이후 1957년 우리말 큰사전에 ‘을씨년스럽다’로 등재됨으로써 시중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는 조선의 4대 사회 중 마지막으로 발생한 사화로 정치적 비극이었다. 인종이 사망하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 간의 싸움이 격화되었다. 훈구파인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이 사림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해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정치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외척이 정권을 전횡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실험장
지난해 12월 3일, 윤석렬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포고령은 일상의 여유로움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함으로써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조치였다고 강변했다. 여기에다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고도 했다. 너무나도 황당무계하고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온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보수 언론조차도 냉랭하게 대처했다. 5·18의 아픈 트라우마가 채 아물지도 않은 남도민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는커녕 더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작년과 올해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겨울은 어쩌면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관리 시험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정치적 혼란을 잘 수습해 왔던 우리로서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힘은 민주화 과정에서 축적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 막겠다”라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킴으로써 비상계엄은 무효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인 과정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정치적 수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의 한국 정치 전문가 장 이브 콜랭(Jean-Yves Colin)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외세나 엘리트가 아닌 시민들의 저항을 통해 아래로부터 쟁취된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 사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이자 잠재적 체제 위기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위기 극복 능력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고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다.
# 국가 위기 때마다 분연히 일어난 저력의 국민성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단군 이래 주변 강대국들의 수많은 외침을 은근과 끈기로 극복하고 나라의 주권과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일본 제국주의의 거친 물결이 휘몰아치던 때에도 선각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나라와 민족을 구했다. 8·15 광복의 감격과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참혹함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피와 눈물로 나라를 지켰다. 4·19 혁명은 도도히 흐르는 민주화를 통해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5·16 이후 박정희 정권은 동서냉전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정치적 안정과 경제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했다. 그 결과 사회는 보편적인 안정을 되찾고, 경제는 정부 주도의 종합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고도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포항제철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의 육성, 수출 위주의 경제 드라이브 정책, 경부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특히 근면, 자조, 협동을 이념으로 내세운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정신과 일상을 획기적으로 개조시켜 나갔다. 지붕개량, 마을 안길 포장, 새마을 정신교육을 통해 너도나도 잘 살 수 있다는 비전과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 연장을 위해 끊임없이 비상조치를 발동했으며, 종신 집권을 위해 만든 초유의 유신 헌법은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채 여물기도 전에 짓이겨버린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 의해 혹독한 암흑기를 맞았으나, 김영삼의 문민정부에 이어 탄생한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50년 만에 선거를 통한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뤘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정치 민주화는 비로소 본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국민을 이기는 어떠한 정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각인시켰다.
# 국민은 늘 강하고 옳다
전 국민의 동참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았던 제3공화국의 산림정책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과 지속가능한 시민 역량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 전 국토가 푸르게 된 데는 동대봉산의 산사태가 계기였다. 동대봉산은 경주시와 울산광역시를 잇는 산줄기 중간에 퍼져 있다. 폭우가 쏟아지면 토양 대부분이 굵은 모래이기 때문에 심은 나무가 유실되는 상황이 되풀이되곤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의 직항 국제선 항공편이 많지 않아 대부분 일본 하네다공항을 거쳐서 들어왔다. 그러니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의 첫인상은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범정부 차원의 국토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1974년부터 매년 10억 그루의 묘목을 10년 동안 전 국토에 심는 대대적인 국민 식수 운동을 벌였다. 각고의 노력으로 산림녹화 사업은 성공했다. 마침내 민둥산의 불명예를 벗어 던지고 금수강산의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말 그대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된 것이다.
필자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매년 식목일이면 전교생이 나무 심기에 동원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공공기관과 각급 사회단체도 연례적으로 식목일 행사로 나무를 심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산림녹화에 매진 또 매진한 값진 열매라 아니할 수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에서 최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국가로 선정했다. 독일이 세계대전 이전에 인공조림에 성공한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세계대전 이후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대부분이 구릉지였던 반면 우리나라는 조림이 어려운 산악지형이 많아 더욱 값진 성공이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산림녹화의 롤 모델로 떠올랐다.
국민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하였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정치 상황을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은 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다 안다. 배가 가는 길을 정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돛의 방향이다. 세상에 대한 긍정은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장자가 말하는 정치권의 오상아(吾喪我-나를 잃고 나서 나를 찾았다)는 과연 있는가?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진정 악의 편인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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